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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글 워런버핏 사진'

투자의 귀재, 현명한 주식투자자 워런 버핏의 일대기 

투자의 귀재, 투자의 전설, 오하마의 현인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주식투자자로 평가받은 한 인물, 바로 미국의 투자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대주주이자 회장 "워런 버핏"이다. 2021년 2월,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보유 자산만 932억 달러, 약 103조 3,000억 원, 주식 투자만으로 전 세계에서 TOP 10안에 드는 부자가 된 워런 버핏은 1930년에 태어나 올해 91이다. 지금까지도 현역 트레이더들과도 상대가 안될 만큼 꾸준하게 주식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재산의 90% 이상을 60세가 넘어서 모았다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1930년 8월 30일 어린 시절,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아버지 "하워드 호만 버핏"과 어머니 "레일리 버핏" 사이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워런 버핏, 워런 버핏의 집안은 할아버지 "어니스트 버핏" 시절까지만 해도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겨우 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 중 버핏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이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또한 공화당 연방 하원으로도 당선되는 등 부와 권력을 거머쥐게 되면서 자수성가하게 된다. 버핏은 어린 시절,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고 사교성이 부족한 아이였지만, 대신 숫자와 돈에 관한 관심과 재능만큼은 탁월했다고 한다. 특히 숫자를 기억하고 연산과 계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살펴봐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식 중개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8살 때부터 주식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후 10살이 되자마자 이미 오마하 도서관에 있는 투자 관련 서적들을 모두 읽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던 버핏은 지금도 하루 일과 중 70~80%를 책을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주주총회 당시 주주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10살이 되던 때에 나는 오마하 공공 도서관에서 투자 관련 서적을 모두 읽었다." "어떤 책은 두 번 읽었다." "나는 현재까지도 19살 때 읽는 책을 지금도 읽고 있다." "19살 때 책에서 얻은 사고의 틀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라고 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11살이 되던 어느 날, 워런 버핏은 처음으로 석유회사인 시티 서비스라는 주식을 매수하게 된다. 1개의 주식은 38달러를 주고 3개의 주식을 산 것인데, 버핏이 매수하고 난 후 주식은 27달러까지 떨어졌다. 초조해진 어린 버핏은 심하게 마음고생을 하다가 40달러까지 상승한 주식을 바로 매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주식이 200달러까지 급상승하는 걸 목격하는 걸 보게 되자 버핏은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린 워런 버핏은 이제부터 투자의 귀재로 불리게 된다. 

워런 버핏은 급상승하는 주식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장기투자의 중요성과 투자에서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워런 버핏은 장사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남들이 유치원을 다니는 6살 때부터 콜라, 골프공, 팝콘 등을 팔게 되면서 돈이란 돈은 전부 저축을 했었고 그로부터 15살이 되었을 무렵, 2,000 달러까지 모으게 되자 계산을 해봤더니 농지가 49,000평을 구매할 여력까지 됐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생이던 17살, 단짝 친구 "돈 댄 리"와 함께  핀볼 게임기 대여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중고 핀볼 게임기를 구입해 이발소에 설치한 다음, 수익이 나면 이발소 주인에게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는 식이였는데, 입소문이 나며 게임기를 설치해달라는 이발소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버핏의 재산은 6,000달러라는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같이 사업을 했던 친구는 버핏을 이렇게 기억했다고 한다. "워런 버핏은 너트에 볼트를 끼워 맞출 줄도 모를 정도로 기계에는 잘 알지 못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워런 버핏은 일찍 사회의 첫 발을 딛게 되었고 투자조합을 설립, 무려 25,000달러를 투자했는데 이 덕분에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투자와 사업에 눈을 뜨게 된 워런 버핏은 일찍부터 대입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대학을 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하게 된 워런 버핏, 당시 머리가 좋았던 워런 버핏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소재 와튼스쿨 경제학부와 네브래스카 대학을 중복으로 졸업한 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버핏은 자신이 생각과 달리 하버드 대학원에 낙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상처를 받은 워런 버핏은 다른 대학원을 알아보던 도중 갑자기 눈에 띄게 된 대학원이 있었는데, 그 대학원은 컬럼비아 대학원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 많은 서적들을 읽게 되면서 큰 감명을 받았던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이자 가치투자의 대가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떠올랐던 워런 버핏은 많은 고민 끝에 컬럼비아 대학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우상으로 생각해왔던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가 있다니 얼마나 기쁘지 않겠는가, 그토록 만나고 싶던 교수를 만나게 되자 다시 한번 어릴 적에 읽었던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의 책들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읽게 되었고, 그가 수업 중에 질문을 던지면 항상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대답할 정도로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수업에 임했던 결과는 전부 A+학점을 받게 되었고, 이에 감탄한 교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학생들에게 A+라는 학점을 준 적이 없었다고 직접 워런 버핏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배웠던 워런 버핏은 사회에 진출하면서 수십 년간 투자의 직접적인 투자와 간접경험을 통해 현재까지 수많은 자산을 축적해오면서 투자자의 우상이자 주식의 귀재로 현재까지 남게 되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물론 타고난 건 확실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동안 워런 버핏도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 시점인 것 같다. 꾸준하게 공부하면서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에 지금이라도 실천한다면 우리도 언젠간 워런 버핏처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억만장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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